<윤리21>은 가라타니 고진의 칸트론을 일본 사회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논증하는 책이다. <윤리21>의 문제 의식은 이후 <트랜스크리틱>의 1부를 통해서 이론화되는데, <윤리21>의 부록으로 <트랜스크리틱> 1부가 수록되어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미 그 시점에서 <트랜스크리틱> 1부의 골격이 잡혀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지성계에서는 칸트를 다시 읽는 유행이 불었다. 한나 아렌트의 <칸트의 정치철학강의>, 리오타르의 <열광> 등이 그 대표적인 작업인데, 이러한 것은 칸트를 <판단력 비판>을 중점으로, 다수의 개별적 주관을 인정하는 정치철학의 주창자로 읽어나가는 것이였다. 다수 주관의 합의에 의한 공통감각, 공공적 합의를 중시하자는 것인데, 가라타니 고진이 보았을 때 이러한 주장은 <순수이성비판>이 초월론적 주체를 상정했던 것과는 이질적인 것이다. 한나 아렌트 류의 <판단력 비판>을 강조하는 칸트 재평가는, 사실 '형이상학'으로서의 코뮤니즘을 비판하고,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하려는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윤리21>에서, 칸트의 정치철학을 아렌트 류의 공공 정치에서 구해내고자 한다. 그리고 칸트의 비판을 재검토하면서, 오늘 날 칸트의 '윤리'란 자본과 국가에 맞서, 자본제 경제를 지양하고, 세계공화국을 지향하는 '가능한 코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도덕이란 보통 선악의 문제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공동체의 규범이다. 한편, 선을 쾌락(행복)의 실현으로 보는 공리주의적 시각이 있다. 칸트는 이 두 가지 입장 모두를 비판하려고 했다. 칸트에게 있어서 보편적인 도덕성의 문제는 '자유'에 있다. 칸트가 '자유'라고 말할 때 그 것은 일반적인 용법과 달리, 다른 곳에 원인이 없는 순수한 자발적, 자율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약 사람이 공동체의 규범에 따른다면 이 것은 타율적인 것이지, 자유가 아니다. 또, 따른다는 의식 없이 그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는 순수하게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면 안된다. 한편,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서도 행위는 신체적 욕구나 타자의 욕망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므로, 칸트적 의미에서 자유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순수하게 자발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 의식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요인에 근거하고 있지 않은가? 원인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행위나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날 '자유로운 사회'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러한 자유는 다양한 교육이나 선전에 의하여 주입된 욕망에 따를 뿐이다. 그 것은 자유와 해방을 외치는 진보적 인사들도 예외는 아닐 것인데, 그들의 사상과 주장 역시 '이미 알려진 패턴'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유, 혹은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칸트는 실천적(도덕적)인 차원에서만 자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의무, 혹은 지상명령을 따른다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어라? 명령에 따르는 것이 왜 자유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칸트가 말한 의무, 지상명령이란 바로 "자유로워지라!"라는 명령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명령과 의무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것은 어떤 어떤 원인으로 부터 자유라는 결과까지 주루룩 도출되는 인과적 세계나, 인식의 차원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워지라'라는 지상명령이 있기에, 비로소 우리는 '자유'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상명령은, 나 뿐 아니라 동시에 타자 역시 '자유로운' 주체로 취급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의 유명한 보편적 도덕법칙,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자유로운 주체)로 대하라"를 떠올릴 수 있겠다. 자유로운 주체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실재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라는 것도, 구조주의자들의 말처럼 사실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주체는 있다. 그것은 윤리적 차원에서만, 타인에 대한 '응답 = 책임'에서만 나타난다.
칸트는 말년에 <항구적 평화를 위하여>라는 책을 썼다. 이 것은 앞서 말한 보편법칙,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자유로운 주체)로 대하라"를 세계적 레벨로 까지 적용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칸트적 이상은 지금의 UN과 같은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철저한 것이다.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 취급하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 역시, 칸트에 있어서는 지양해야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지양하기, (필연적 충돌을 내재하는) 국가제도를 폐기하고 세계 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이 것이 칸트의 윤리학이 오늘 날 가진 방향성인 것이다.
1. 부모의 책임을 묻는 일본의 특수성
윤리라는 것이 응답에 대한 책임에 의해 나타난다면, 그 때 과연 '책임'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 '책임'의 문제에 관하여 흥미로운 사례를 가져온다. 그 것은 바로 고베 시 중학생 사건(소년 A 사건)이다. 벌써 10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지만, 당시 한국 언론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던 일로 내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이다.
1997년, 고베 시의 중학교 3학년 소년이 살인과 상해를 몇 차례나 저지르고, 피해자의 머리를 절단해 학교 교문에 놓아둔다던가, 경찰과 매스컴에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보내기도 한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소년 A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인데, 흔히들 이 사건에 대해 현대 일본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라느니, 청소년들의 왜곡된 심리를 극단적으로 반영하는 예라느니 하고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은 이 사건 자체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난 반응의 형태에 주목한다. 이 것은 비단 소년 A 사건 뿐 아니라, 연소자가 뭔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반드시 나오는 담론인데, 바로 '부모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의 부모는 매스미디어로 부터 공격을 당하고, 몇번이나 사죄를 요구받는다. 그리고 부모는 실제로 그렇게 무릎 꿇어 사죄한다. 오히려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사죄하기를 거부하는 극우파 언론들이 이런 경우에는 부모의 사죄를 격렬히 요구하는 모순적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가라타니 고진은 여기서 부터 '책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부모의 책임'이 이야기되었던 것은 소년 A 사건이 최초가 아니었다. 연합적군의 린치와 살인이 문제가 되어 일본 신ㅈ익 운동 전체를 무너뜨린 아사마 산장 사건(1972년)에서도 마찬가지의 담론이 제기되었다. 이때 '부모의 책임', '가족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극렬해지자 적군 대원의 부모와 가족들은 사회의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 두거나, 심지어 자살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라타니 고진은 특히 적군 대원의 아버지가 자살하게 된 사건에 대하여 굉장히 분노했는데, 적군 대원들은 자신이 한 행위에 '책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부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부모를 자살로 몰고간 '사회'는, 과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것인가?
법적으로 무죄라 하더라도 도덕적인 책임을 묻게 되는 경우가 있다. 국가가 법적으로 죄를 추궁한다고 하면, 공동체는 도덕적 책임을 추궁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덕이란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한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적 규범으로서의 도덕은 어느 나라를, 어느 지역을 따지더라도 나름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의 경우, 이러한 공동체의 도덕이 상당히 특이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경우를 보자. 미국 역시 정말로 터무니 없는 소년 범죄가 자주 일어나지만, 미국의 경우 부모가 자식의 범죄에 책임을 지고 사죄한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생소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범인의 부모가 "나는 자식의 무죄를 믿는다"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 1995년, 오키나와에서 한 일본 초등학생 소녀가 미군 병사 셋에게 강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 전역이 떠들썩해져, 미일간 국제 문제가 대두되어 클린턴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할 때, 일본에 온 미군 병사의 어머니는 "이 재판은 함정이고 내 아들은 무죄다.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날조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일본 언론은 어머니의 파렴치한 발언을 규탄했지만, 미국인들은 어머니의 이러한 발언이 무책임하다고 반성을 촉구하지 않았다. 이 것은 단지 초강대국의 지위에 있는 미국의 오만함에 불과한가? 그렇다기 보다는, 자식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부모가 그 것을 변호하려고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달려들어 부모를 비난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이 것은 미국이 개인주의적인 사회라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미국과 비교했을 때, 일본인의 멘탈리티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의 예를 들 수 있겠다. <마더> 역시 살인범으로 몰린 정신지체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이 어머니의 분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피해자의 장례식장에 간 어머니가, 유족과 언론, 주변인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자식의 무죄를 주장하는 장면. 여기에 대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반드시 아이를 지키며, 그렇다고 부모가 비난 받지는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부모가 자살하는 일도 없다.
(*라고 고진의 논의를 따라봤지만, 사실 요새 들어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근 인터넷 마녀 사냥의 경향을 보면, 연좌제가 부활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범행 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공동체에서 '추방'시키려 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젊은이들이 활동하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여론이며, 오늘 날 한국 사회의 중장년층의 인식 자체는 다르다고 본다. 오히려 요새 들어 인터넷의 이러한 여론은 한국 젊은이들의 멘탈리티가 '일본화'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일단 한국과 일본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설정 자체가 다르다. 이것은 특히 재일한국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에서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대표적인 재일작가인 유미리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적대를 소설을 통해 그려내면, 일본인 문학평론가들은 '일본에서 이러한 아버지는 없다!'라고 단언한다고 한다. 한일 모두가 치열한 입시 공부의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경우 한국은 부모가 하라고 하면 아이는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렇게 명령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사실은 아이를 자유롭고 구김살 없이 키우고 싶어"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한다면 아이가 성공하지 못하지 않을까,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아이에게 책임을 느끼고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를 구속하고, 자신도 구속된다. 일본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하지마, ~해"로 말하지 않고, "부탁이니까 제발 ~하지마, ~해"라고 한다. 이 것이 한일 부모의 차이이고, 또 이 것은 양국이 가진 '사회'에 대한 인식 차에서 유발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1) '사회'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가진 힘
아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왜 부모가 책임을 지는가? 그 책임은 누구에 대한 책임인가? 그것은 바로 '사회'에 대해서다. 피해자의 부모가 느끼는 분노에 대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것은 '사회'(혹은 현실적으로는 저널리즘)가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비난과 공격에 괴로워하는 부모가 자살한다면, 과연 그 것에 '사회'가 책임을 지는 걸까? '사회'라는 것은 애매모호하다. 분명한 주체가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부모를 비난 할때, 그 이유로는 항상 '사회가 납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서구에는 기독교적 도덕이 있고, 그 것이 개인주의의 기반이 된다고 한다. 유교권인 중국과 한국에서도 어떤 도덕적 기축이 있고, 이 것이 역설적으로 일종의 개인주의를 가능케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그런 것이 없고, 그 대신 '사회'라는 알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어떤 명확한 도덕적 규범이 없는 대신, '사회', '공동체'의 규제가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공동체'는 어디서 온 것일까? 가라타니 고진은 그 것이, 도쿠가와 시대에 형성되고, 메에지 시대와 전후 농지해방 이후에도 해체되지 않았던 마을 공동체에 기반한다고 본다. 물론 그 마을공동체가 과연 봉건적인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적인 것에 기반한 것인지 엄청난 논의가(30년대 노농파와 강좌파의 논쟁) 있었지만, 사실 봉건적 지주를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 지주까지 구속하고 있는 것이 마을 공동체이다. 중세 유럽 뿐 아니라, 중국과 조선에서도 이러한 봉건제, 혹은 유사 봉건제가 있었으나, 이 때 '지주'들은 보통 명확한 '지배 세력'인 영주, 관리, 혹은 양반들이었다. 그래서 봉건 제도와 날카로운 계급 대립이 나타난 것이다. (중국의 경우 녹림, 태평천국 운동, 홍군. 조선의 경우 농민 봉기와 동학 운동.) 그러나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시대의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보면 현대에 이르기까지 잔존하고 있다.
마을공동체라면 긴밀하고 친화력 있는 집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으로 일본 촌락을 관찰한 중요한 저서인 기다 미노루의 <미치광이 부락 주유 기행>(1948)이라는 책을 참조해보자. 프랑스에서 공부한 인류 학자였던 기다 미노루는, 평범한 일본의 농촌을 외계인이 처음으로 보는 것처럼 관찰한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마을공동체의 주민들 사이에서, 실은 우정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우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자기'가 없는 것이다. 공동체의 중심은 '사회'고, 개개인은 그 것을 무서워한다. 따라서 고립을 두려워해 사이좋게 지내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 근본적으로 이기적인데, '자기(에고)'는 없다.
이러한 관찰은 최근 젊은이들에게 일어나는 오타쿠화를 떠올리게 한다. 오타쿠들은 서로에게 친근하게 군다.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통해, 생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 혹 서로 댓글도 그리 단 적 없는 사람들에게도 밝고 친절하게 대하며, 혹은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서로 그리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아한다. 이 것은 상당히 분열증적인 현상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한국 등 다른 국가들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이 현상이 선진적으로, 극도로 진행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왜 하필 일본인가? 라는 물음에서, 그 이유를 마을공동체의 잔존에서 찾는다. 마을사람들은 타인과 친밀히 지내지만 '우정' 같은 관계는 맺지 않는다. 세상 천지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 없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다만 '사회'를 두려워할 뿐이다.
(*꼭 일본만 그런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슬라보예 지젝은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에서, 영화 <마농의 샘>을 예로 들어 농촌공동체에 만연한 '타인에게 간섭하지 말라'라는 공동체적 불문율을 보여주기도 한다.)
2) 엔치 후미코의 <식탁이 없는 집>이 그리고 있는 두 개의 투쟁
엔치 후미코의 <식탁이 없는 집>이라는 소설이 있다. 앞서 말한 연합적군 사건 이후 수 년 후에 연재된 작품인데, 이 소설은 아들이 그러한 사건으로 체포되었을 때 부모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현실과 달리, 적군대원의 아버지가 사죄를 하지도, 회사를 사직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적군에 가담한 것을 긍정하지도 않고, 또 그 자체에는 부모 자신에게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아들이 한 일로 부모가 책임을 질 필요는 아무 것도 없다. 만약 아들이 독립된 인격이 아니라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다면 부모의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오히려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사죄한다는 것은 아들에게 자유가 없다고 간주하는 일이 된다. 아들의 일에 대해서는, 아들이 책임을 주민 된다.
이러한 부모의 단호한 태도는 굉장한 용기와 결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것은 일본에서 '사회'라는 것과 투쟁한다는 선언과 다름 아니다. 엔치 후미코는 이러한 '투쟁'을 오히려 연합적군의 투쟁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 소설에는 일본 국가권력과 아들의 투쟁, 그리고 일본 '사회'와 아버지의 투쟁이라는 두 가지 투쟁이 등장한다. 아들의 투쟁은 동지들의 대량 살해로, 아버지의 투쟁은 딸의 파혼과 아내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두 투쟁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비록 세상으로 부터, 무책임하고 냉혹한 아버지로 보일지 모르나, 오히려 극히 '윤리적인' 인간이다. 그는 아들이 한 행위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아들이 책임을 져야할 (자유로운) 주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하려 한다. 이러한 자유는, 부모가 대신 책임을 진다던가 하는 순간 끝장나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세상의 비난과 투쟁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도덕성, 윤리성과 마주친다. 이 것은 키에르케고르가 윤리 A 와 윤리 B로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는 사회(공동체)가 부과하는 선악의 기준이고, 둘 째는 도덕성을 '자유'로 간주하는 칸트적 아이디어다. 이러한 두 가지 입장에서, 도덕성, 책임, 자유 등의 동일한 개념은 서로 대립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윤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2. 인간의 공격성을 인식하는 일
소년 A 사건 이후 일본의 심리학자, 사회학자, 교육학자들은 제각기 언론지상에 이러저러한 코멘트를 남겼다. 사건의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의 말을 남기고, 이 것을 부모와 사회의 책임으로 귀결시키는 듯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러한 '학자'들의 코멘트를 의심스럽게 생각하는데, 이러한 '학자'들이 객관적으로 사건의 원인을 찾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결국 이러한 원인이라는 것이 '책임'과 혼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죽음 충동'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것은 구체적으로 '공격성'의 문제인데, 이 '죽음 충동'이 외부로 향하게 되면 공격성이 된다. 이러한 공격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죽음 충동'의 외부화가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지만, 공격성이 발현되는 사건에 대하여 '학자'들은 꼭 가정환경을 들먹이며 부모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 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인데, 병의 원인은 그 것이 실제 증세로 나타났을 때만 소급해서 발견되는 것이고, 일정한 원인이 있다 해서 꼭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그 원인을 부모, 학교, 환경, 현대 사회로 소급해 올라가다가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면 정작 그 원인들에 대한 해명은 잊혀지고 만다. 원인을 묻는 것과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신경증은 그 원인을 알면 치유된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을 당사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기의 경험에서 찾을 것을 주장했다. 유년기의 억압에 의하여 신경증이 생긴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억압'이라는 원인이 발견되는 것은 실제로 병의 증세가 나타났을 때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병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야만, 거슬로 올라가는 형태로 그 원인이 발견된다. 억압을 피한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부모 혹은 공동체의 규범을 내면화하는 곳에서 초자아가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서 초자아의 기원을 죽음 충동, 공격 욕구, 즉 내부에서 찾게 된다. 부모의 억압 없이도 매우 강한 초자아와 양심을 가지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완전히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어떤 점에서는 '선'하고 다른 점에서는 '악'하며, 또는 어떤 외적 조건에서는 '선'하고 다른 조건하에서는 결정적으로 '악'하다. 흥미롭게도 소년기에 지독하게 악한 여러 활동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성년기가 되었을 때 '선'으로 전환하기위한 명백한 조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소년기에 매우 이기주의적이었던 사람이 남을 돕기를 아주 좋아하는 가장 헌신적인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많은 경우 동정심이 흘러 넘치는 사람이라든가 인도주의자와 동물애호가들은 소년기에 새디스트나 동물학대자로 부터 성장해온 사람들이다." - 프로이트, <전쟁과 죽음에 관한 시평>
그러나 이 것은 지금 새디스트인 아이가 나중에 동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자연과학에서 '인과성'이란 A면 B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원인이란 B라는 결과가 나올 때만 A라는 원인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A는 B를 규정하지 않는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것을 '구조론적 인과성'이라 불렀다. B라는 증상의 원인이 A라 해서, 결코 A라면 B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건에 대한 어떤 원인이 발견된다 하여도,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그 원인에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죽음 충동'으로 돌아가자. 프로이트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신경증'에 걸린 환자들을 만나면서 이 개념을 생각해냈다. 환자들은 반복적으로 전쟁의 악몽을 꾸면서 괴로워했는데, 만약 프로이트가 이전 <꿈의 해석>에서 말했던 것 처럼 꿈의 원리가 1) 수면을 지속시키는 것이고 2) 소망의 충족이라고 한다면 이 경우 완전하게 이에 반하는 것이였다. 불쾌한 꿈을 반복적으로 꾸며 깨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꿈의 원리가 '소망 충족'에 있다는 것을 일관적으로 도입한다면, 그 소망이라는 것을 통상적 쾌락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죽음 충동'이며, 이 것은 '쾌락 원칙의 저 너머'에 있는 것이다. 보통 쾌락 원칙이라 하면 쾌락을 찾고, 불쾌함을 피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서 보았을 때 죽음 충동은 불합리하게 보인다. 그러나 '죽음 충동'은 쾌락원칙을 넘어선 또 다른 쾌락 원칙으로 존재한다.
프로이트는 초자아(양심)이 보통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면서 이뤄진다고 생각했지만, '죽음 충동'이라는 개념을 생각한 이후 그의 견해는 180도 바뀐다. 초자아는 밖을 향한 공격성이 내면으로 향했을 때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로부터 아무런 강제도 받지 않은 아이가 엄격한 양심의 소유자가 된다거나, 소년기에 동물학대자였던 사람이 나중에 동물애호가가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 충동'의 개념은 프로이트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도스토프예프스키를 비롯한 19세기 작가들은 문학에서 인간 본연이 가진 '악'의 문제를 숙고했다. 동시대인들이 합리적, 공리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을 때,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직관을 통해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인간의 심리를 그려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악'과 공격성은, 공적 교육과 언론 매체 등에서는 부러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체제와 구조와 환경이 이상적이다 하더라도, 인간의 악, 공격성은 남는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선행해야만, '책임'을 묻는 것, 곧 실천(윤리)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3. 자유는 결코 '자연'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떠한 사건에 대해 쉽게 '책임'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들은 일면적으로만 도덕적이어서 그 '원인'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건에 대해 원인을 아는 것은 인식의 문제며,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실천(윤리)의 문제다. 이를 구별한 사람이 바로 칸트였다. 그러나 여기서 인식의 영역과 윤리의 영역, 칸트의 말로 하자면 자연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을 구별할 수는 있으나, 이 것들이 각기 따로 독립해 있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하나의 내용이 인식의 대상이자, 동시에 윤리적 판단의 대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러한 문제를 이율배반이라는 형태로 보여주었다.
정명제 - 자연법칙에 따르는 인과성은 그것으로부터 세계의 모든 현상이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인과성이 아니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외에 자유에 의한 인과성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반대명제 - 무릇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따라서만 생겨난다.
이 것은 제 3 이율배반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는 양 명제가 성립하는 것을 귀류법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나 제 1 이율배반에서, '세계는 유한하다'라는 명제와 '세계는 무한하다'라는 반대명제 모두 성립함을 증명한 후, 그러므로 그것들은 모두 거짓이라고 한 것에 비해 제 3 이율배반은 같은 논리에 의해 반대의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증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 인간을 강제하고 있는 구조에 대한 인식
제 3 이율배반의 반대명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여기서 자연법칙이라는 것은 근대과학의 인과성이라기 보다는, 스피노자적 결정론을 의미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것은 자연필연적으로 결정되어있다.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할 때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그 경우 어디까지가 인과성에 의해 강제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인과성이라는 것은 정말로 복잡하게 작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원인에 의한 결정을 인정하고, 또 어느 정도는 자유의지를 인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범죄자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어쨌든 그의 범죄 행위는 어떤 인과성에 의하여 벌어지게 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는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고, 따라서 책임이 없다"라는 식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다. 여기에서는 범죄자의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원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동시에 자유가 있다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를 부정한다. 인간의 행위는 모두 원인에 의해 결정되고, 자유 따위는 없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생각이다.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피노자에게 원인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순수한 자율성인 '자기원인'이다. (* 이 '자기원인'을 '무의식'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자연에 의해 복잡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있을 수 없고, 다만 '자기원인'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인식하는 것, 또는 원인을 인식하고자 하는 의지를 스피노자는 바로 '윤리'라고 생각하여, 높이 평가했다.
"나는 자본가나 토지소유자의 모습을 결코 장미 빛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인 한에서의 인간,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해관계의 담당자인 한에서의 인간에 불과하다. 경제적 사회구성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파악하는 나의 입장은 다른 어떤 입장보다도 더 개인이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어느 정도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역시 관계들의 산물이다." (<자본론> 서문)
맑스 역시 마찬가지의 인식 -> 윤리를 강조한다. 맑스는 개개인이 관계의 산물이면서도, 마치 그것을 초월한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것은 결국 '초월한 것처럼'에 불과하다. 개개인은 결코 사회적 관계의 작용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 개개인의 자본가가 아무리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행동을 한다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자본의 담당자로 강제되고 마는 관계 구조 하에 있다. 세간에서는 맑스주의를 부자를 미워하는 사상이라 오해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부자 개인은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부자를 나쁘게 행동할 수 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사회적 구조가 중요한 것이다. 이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맑스주의 윤리학의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2) '자유로워지라'는 의무와 자유
사람들은 선인과 악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선인과 악인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그런 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것은 앞서 말했듯 스피노자가 '자유의지'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의지가 없다면, 자유로운 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 '주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피노자 그 자신도 주체가 아니라는 말인가? 스피노자는 유태인이었지만, 유태인 공동체에서 파문 당하고 기독교 공동체에도 발을 담지 않았던 단독자였으면서도, 세계시민이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가 그러한 삶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인식에 대한 의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말을 뒤집어 생각해야한다. 자유로운(데카르트적) 주체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주체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 반대로, 지금까지 사람들이 주체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주체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로운 주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진짜' 주체가 되어야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가 이러한 스피노자적 결정론 위에서 사고했다고 본다. 그 위에서, 칸트는 '자유(주체)가 어떻게 가능한가?'의 문제를 논했던 것이다. 그리고 칸트는 자유를 도덕성(윤리)에서 찾는다.
칸트 이전에는 두 가지의 도덕학설이 존재했다. 하나는 도덕적 규범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견해로, 그러한 도덕은 '공동체의 도덕'으로 기능하는 것이었다. 칸트는 이를 '타율적'인 것이라 비판한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도덕(선악)을 개인의 행복이나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견해(공리주의)였다. 칸트는 이 또한 비판했는데, 그러한 도덕은 자연에 의해 지배당하는 도덕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원인'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비판한 바로 그 것이다. 칸트는 여기에서부터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가를 물었다.
이는 얼핏 구조주의자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라캉이나 알튀세르 역시 '자유로운 주체'라는 개념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라캉과 알튀세르는 그 이전에 인간의 자유를 강조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맞서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라캉과 알튀세르에서는 주체와 윤리의 문제가 사라져버린다. 이 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것이 포스트구조주의의 과제였다. 그 것은 스피노자적 구조주의에 대해 칸트가 '자유'를 되찾으려고 했던 것과 유사하다. 즉 칸트는 어떻게 인간이 원인에 의해 규정되는지를 숙지한 위에서 자유를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자유는 결코 '자연'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 자유는 의무에 따름으로써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이 때의 의무는 이미 이야기했던 것처럼, 공동체의 규범을 내면화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칸트의 당위적인 '의무'와 '지상명령'은, 바로 '자유로워지라'라는 명령이다.
그렇다면 이 '지상명령'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칸트는 여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처럼 초월적 개념인 신을 꺼내들지도 않았다. 우리는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 칸트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찾을 수 있다. 칸트가 자유를 의무로 본 데에 비해,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져있다"고 했다.
사르트르는 돌이 돌과 같은 본연의 상태에 있는 것을 즉자존재라고 부른다. 그에 비해 인간은 대자존재, 즉 존재하는 데의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데의 것이라는 존재방식을 취한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고, 자신을 결정적으로 근거지울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거기에서 오는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정에서 도피하려고 한다. 따라서 한국인, 남자, 학생 등으로 스스로 규정지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그 것이 자기기만이며,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라는 조건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칸트가 말하는 자유로워지라는 명령과 의무는 이러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유롭고 또 불안한 대자존재가 서로 타자를 물화物化시키려고 함으로써 항상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것은 칸트가 타자를 자유로 대할 수 있고, 또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4. 자연적, 사회적 인과성을 배제한다.
칸트가 제3이율배반에서 정명제와 반대명제, 다시 말해 인식의 영역과 윤리의 영역이 양립한다고 말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유의해야할 것은 특정 대상은 인식의 영역에, 다른 무엇은 윤리의 영역에, 라는 식으로 각 영역이 따로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일한 하나의 내용이 인식의 대상이며, 동시에 윤리적 판단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그것은 미적 판단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범죄자를 예로 들어보자. 범죄자는 법적, 도덕적으로 비난 당하는 동시에, 미적 판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많은 영화에서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범죄자를 혐오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들을 지지하고 자기동일화하기도 한다. 이 것은 미적 판단이다. 그 근거를 칸트는 '무관심'에서 찾는다. 이 무관심은 도덕적, 지적 관심을 괄호에 넣는(배제하는) 것이다. 다른 관심을 괄호에 넣고, 오로지 미적 판단으로 영화 속의 범죄자를 바라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화 속의 범죄자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영화 속의 범죄자 그 자체를 무서워하고, 때로는 현실과 영화를 분간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충분한 문화적 훈련을 받은 후에야, 어른들처럼 다른 관심을 괄호에 넣고 오로지 미적 판단으로 영화를 대할 수 있다. 이 것은 처음부터 어떤 대상에 대해 자명하게 영역이 나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칸트는 미적 판단은 다른 관심을 배제하는 것이라 보았다. 어떤 사물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은 그것에 대한 관심을 배제함으로써 결정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품은 우리가 그 것에 미적 판단의 대상이라 훈련받았기 때문에 예술품이라 불리는 것이다. 현대 미술의 경우, 이 것이 과연 예술인가 싶을 정도로 요상한 것이 많지만, 우리는 그것이 예술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미적 판단의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관심을 괄호 안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 괄호를 벗겨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도덕적 영역이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판단할 때 최소한 인식적 판단, 도덕적 판단, 미적 판단이라는 세 가지 이상의 판단을 동시에 한다. 그러나 훈련 받은 대로 나머지 관심을 괄호에 넣어버린다. 그런데 이 괄호에 넣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여기서 괄호를 벗기는, 태도 변경을 배워야 한다.
1) 자유라는 관점에서 도덕성을 본다.
흔히 인간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규정되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선택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칸트는 양극적으로 생각해, 자유가 존재한다는 정명제와 일체의 자유란 없다고 생각하는 반대명제가 동시에 양립한다고 생각했다. '절충'이 없는 것이다. 칸트의 이러한 태도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살인자가 한 명 있다고 보자. 칸트는 당사자가 왜 살인을 했는지, 불가피한 원인이 있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여러 원인을 따져가면 이 범인에게 '자유'라는 것은 없고, 따라서 어떠한 책임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내가 행위하는 시점에서 결코 자유가 아니다. (중략) 나는 어떤 시점에서도 여전히 (자연) 필연성에 의해 지배되며, 내 자유가 아닌 것에 의해 행위를 규정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요컨대 모든 사건의 이런 무제한적인 계열은 자연에서의 끝없는 연쇄며, 따라서 나의 원인성 역시 결코 자유는 아니다."
-<실천 이성 비판>
그러나 반대로 칸트는 이 범인에게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행위하는 시점에서 자유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가 그 스스로의 자유에 의해 이 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자유는 없다. 자유는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의무)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결정론적인 인과성을 배제하고 오직 실천-윤리적인 '자유'에 의하여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감성적 세계와 이성적 세계, 현상과 물자체를 구별했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두 개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세계에서, 우리가 자유를 배제했을 때 현상(자연필연성의 세계)이 등장하고, 또 자연필연성을 배제할 때 자유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뭔가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자유로워지라'는 당위에 대한 윤리적 책임 때문이다. 사실상 그에게 자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아야하는 것이다.
이 것은 정말로 냉혹한 윤리다. 칸트에게서 도덕성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이다. 이제까지의 윤리학은 선악이 무엇인가 논해 왔다. 그에 비해 칸트는 윤리를 오직 '자유'에서 찾는다. 만약 자유라는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체도 없고 책임도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사회적, 자연적 인과성만 남는다. 반대로, 사회적, 자연적 인과성을 배제(괄호 넣기) 할 때에 이 '자유'가 드러난다. 자유를 의지할 때만, 자유가 생겨나는 것이다.
2) 책임을 지는 방법으로서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인식
따라서 책임 역시 우리가 자유, 즉 자기가 원인이라고 상정할 때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든, 실제로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그 때에도 마치 자신이 원인인 것 처럼 생각할 때 책임이 생긴다. 이 때에, 그 책임은 어떻게 져야만 하는가?
보통의 경우 이러한 책임은 법적인 책임에서 끝나게 된다. 사죄, 복역, 사형 등의 방법이 그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책임을 지려 한다면, 그 동안의 과거를 남김없이 고찰하여 자신이 어떻게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것은 자기 변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가 원인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있는 그대로를 감추지도 빼지도 않고 쓰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작가들은 그 가능성을 '소설', 즉 허구에서 찾아냈다.
5. 세계시민으로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공공적인'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이 보통 인간의 이성을 신뢰한 것에 비해, 칸트는 이성의 불가피한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칸트는 설사 개인으로서는 성숙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집단(국가)는 항상 미성년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는 '이성의 공공적 사용'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것에 무제한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때 주의할 것은 '공공적 사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다. 우리는 보통 '공공'이라고 한다면 개인이 공공(국가, 사회, 공동체)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칸트는 오히려 국가, 사회, 공동체는 영원히 미성숙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공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국가/사회/공동체를 위하는 것'은 오히려 사적인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개인(세계시민)으로, 어떤 국가/사회/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생각해야 한다. 그 것이야 말로 공적인 것이다. 칸트가 말한 공공public은 바로 그런 것이다.
한나 아렌트나 위르겐 하버마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들은 칸트가 말한 공공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주관, 또는 이성은 하나 밖에 없다. 여기에는 다른 주관, 혹은 타자가 빠져있다. 하버마스는 이를 비판하며 주관을 다른 주관(타자)과의 대화와 합의에 의한 간주관성으로, 혹은 이성을 '공공적 이성'으로 구성해야한다고 한다. 한편 한나 아렌트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정치학의 원리로 내세워, 다수의 주관을 강조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주관은 누구의 것도 아닌 것(X)으로 등장한다. 이 것은 자연과학의 진리성에 기초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취미 판단의 경우 그 사정이 달라진다. 취미판단에서 엄밀한 보편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주관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칸트는 미적 판단에서 보편성을 주는 것은 경험적 예술 체험에서 오는 '공통감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공통 감각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것이며, 다수의 주관 사이의 대화와 합의에 근거하여 정해지고, 또 변화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것이 민주 정치의 원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개개의 주관을 넘어선 진리(보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토의에 의한 '공공적 합의'에 의해 얻어지는 잠정적 진리, (변화할) 진리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타자를 배제하고 있는 것인가? 칸트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주관에 의해 구성된 현상일 뿐이고, 물자체는 알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물자체'란 무엇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 물자체야 말로, 타자, 특히 미래의 타자를 의미한다고 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 뿐이고,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가지론이 아니라, 인식이 보편적이기 위해서는 '불투명한 타자'를 상정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불투명한 타자', '자유로운 타자'는 언젠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내가 어떤 주장을 내세우건 거기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타자다. 정말 '보편적'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타자를 잊어서는 안된다.
과연 민주주의는 '공공적 이성'에 의하여, 혹은 '공통감각'에 의한 합의를 통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와 다른 '공통감각'을 소유한 타자들, 이를테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나, 혹은 우리의 미래 후손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합의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렌트나 하버마스가 '공공적 합의'라 부르는 것은 단지 동일한 공통감각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의 합의이다. 실제로 하버마스는 유럽공동체의 '공공적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NATO의 코소보 공습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 것은 일정한 시간, 공간에 한정된 '공공적 합의'고, 다른 것을 배제하는 합의이다. 그러나 동일한 공통감각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타자'를 배제할 수 있는 것인가? (코소보 주민들의 생존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것이야 말로 주관적이고 독단적인 태도가 아닌가? 우리는 아렌트나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공성'에 맞서, 칸트의 '공공성'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6. 종교는 윤리적인 한에서 긍정된다.
그렇다면 칸트의 '공공성'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칸트적인 의미에서 공공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내부 고발자'라는 개념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회사, 조직, 공동체의 내부적 비리나, 조직이 외부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 내부적으로 해결이 안될 때, 외부에 그 것을 알리는 양심적 행위자들이 바로 내부 고발자들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 이상 그 조직의 이익에 반하는 내부 고발은 용납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 내부의 비리나, 불법, 부정 행위를 알고 있지만 만약 진실을 공개할 경우 자신이 입게 될 피해 때문에 쉽게 행동하지 못한다. 조직, 공동체의 불문율(규범, 도덕)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윤리적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모종의 양심적 가책을 받게 된다. 이 때 조직원들이 양심적 가책을 받는 것은, 바로 그들이 해야할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칸트적 의미에서라면, 그들은 '공공'을 위하여 그 의무를 실천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째, 칸트적인 '의무'에 따를 때 많은 경우 불행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칸트는 신, 영혼 등의 종교적 주장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형이상학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윤리적(실천적)으로만 종교(형이상학)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만약 종교(형이상학)이 없다면, 사람들은 윤리적이기 보다는 현실의 쾌락을 위해 살게 될 것이다. 종교(형이상학)은 윤리성을 북돋는다. 칸트는 그러한 한에서만 종교(형이상학)를 긍정했고, 또 그러한 한에서 종교(형이상학)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종교(형이상학)을 플라톤적으로 말하자면 '이데아'가 될 것이고, 또 달리 표현하자면 '대의cause'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덕, 윤리, 종교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책에서 사회나 공동체의 도덕을 '도덕', 세계시민으로서의 도덕을 '윤리'라고 부른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것을 종교에서는 종교A와 종교B, 윤리로서는 윤리A와 윤리B로 구분한다. 종교A는 공동체 종교, 종교B는 세계종교가 된다. 흔히 종교성을 우위에 둔다고 여겨지는 키에르케고르 역시 종교B에 대해 윤리B를 초래하는 종교라고 말했다. 그의 관심 역시 '윤리'에 있었던 것이다.
종교A(공동체 종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교이다. 원시적 신앙에서 지금 존재하는 종교들까지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기독교나 불교 같은 세계종교는 그 것을 부정하면서 등장했지만, 결국 종교의 형태로 존속하는 이상 공동체 종교에 머무르고 만다. 그러나 세계종교의 창시자, 이를테면 예수나 부처로 돌아가자면, 그들은 항상 타자에 대한 윤리(사랑과 자비)를 말했고, 여느 공동체 종교에 존재하는 내세나 구원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부처는 '자기'(영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했다. 부처 이전의 종교가 영혼의 윤회와 해탈을 그 과제로 했다면, 부처는 그 것을 중시하지 않고 단지 타인에 대해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가 영혼과 윤회, 해탈을 부정하지 않은 것은, 단지 이러한 목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쾌락만을 쫓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부처 역시 칸트처럼 윤리적인 한에서 종교를 긍정한 셈이다.
1) 세계종교는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앞서 스피노자가 자유는 상상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 것은 종교에서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실제로 스피노자는 칼뱅의 '예정설'(구원을 받을지의 여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에 공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왜 자유의지가 부정되는 것일까? 자유의지가 없다면 주체나 실천(윤리)이 부정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스피노자가 자유의지를 부정한 것은 사람들을 윤리성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세계종교에서도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은 사람들을 윤리성으로 향하게 한다.
세계종교가 자유의지를 부정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것을 그렇게 믿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다. 실제적으로, 요즘 세상에서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고(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 기타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손에 피를 묻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피 묻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 의지로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 '손에 피를 묻히는' 사람들은 자유의지로 악하게 산 것이고, 지옥에 가야 하는가?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손에 피를 묻히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는가?"라고 물었다. 예수는 그에 대해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답했다. 예수는 그 뿐 아니라,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독교에서는 보통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라는 예수의 말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바꿔 말한다. (*문헌학적 확인이 필요하겠다.) 그러면 부자라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의 사회적 관계는 그대로 두고 개인의 내면만 착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앞의 상황에서 보았듯, '가난한 사람'은 구체적으로 세리나 매춘부라는 '죄인'들, 구체적인 사회적 생산관계에서 '손에 피를 묻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부처도 예수도 저 세상의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윤리였던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행을 하고, 봉사하는 것이 타자에 대한 윤리라고 보지 않았다. 그 것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의지라고 생각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체면과 관습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유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역으로, 진실로 '자유로워지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 따위는 없다라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윤리적(자유)인 행위가 이루어진다.
2) 오십 보와 백 보의 차이가 가지는 절대성
세계종교는 인간의 근원적인 죄를 말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만 필요하다. 예수가 "마음속으로 간음한 자는 이미 간음한 자다.",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의 '원죄'와 신에 의한 구원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종교A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예수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죄를 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간접적으로는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인을 사회적인 관계에서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매개적으로 모든 사람들과 관계하고 있다. 나는 동물을 죽이진 않지만, 고기를 먹는다. 나는 군사적, 경제적 제국주의에 반대하지만, 그 것에 의해 얻어진 생활 수준은 향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말 근본적으로 윤리적이고자 한다면, 자기가 손수 하고 있는가 아닌가 라는 문제는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종교A는 그것은 인간의 깊은 죄, 원죄의 수준으로 말함으로 모든 인간을 용서한다. 실제로 간음하는가 안하는가, 실제로 죽이는가 죽이지 않는가 하는 차이는 절대성 앞에서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윤리도 없어져 버린다.
모든 사람에게 원죄가 있다, 모든 사람은 무거운 죄를 지고 있다는 인식은 언뜻 심원한 것으로 보이나, 그 것이 다른 죄들을 무화시켜버리는 것이 되서는 안된다. '절대'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오십보 백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오십보나 백보나 똑같이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오십보와 백보 사이에는 오십보라는 차이가 있고, 그것이야 말로 '절대'다. 결국 각자는 어떤 상황에서 직간접적인 강요 속에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선택한 순간 그것을 자신의 자유(의무)의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거기에서 '책임'이 나온다.
물론 억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윤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나는 몰랐다"라고, 책임지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어찌하여 진정 윤리적으로 살아나가려는 사람들만 '책임'져야 하는가?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나이다"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혹 모른 채 하는 사람들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칸트는 행위자가 무지한가, 아닌가를 구별하지 않는다. 우리가 '도덕법칙'을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지 어떨지는 정해진 것이 아니며, 거기에 자유의지 따위는 없다. 자유는 '자유로워지라'는 도덕법칙을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때에만 존재한다. 그 것은 실제로 '몰랐는가' 아닌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 책임을 지지 못한다는 것은, 따라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7. 공리주의에는 '자유'가 없다.
앞서 간주관성, 공공적 합의와 같은 논의를 하는 아렌트, 하버마스 등에게는 '타자'의 문제가 빠져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타자란 비서양, 후진국, 혹은 소수파에 속하는 사람들을 함의했다. 그러한 타자는 적어도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합의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어쨌든 대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나, 혹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불가능하다. 그들과의 비대칭적인 관계는 결코 뒤집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타자'라 할 수 있다.
타자에 대해 쉽게 논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타자를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 '대화'를 하자면, 바로 지금 대답이 나오는 것에 한정해서도 안되고, 대칭적 관계에만 한정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대칭적 관계의 대화는 아주 드물게 성립되고, 우리의 '대화'는 보통 거의 비대칭적인 것이라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항상 잊혀진다. 공공적 합의라든가 사회적 계약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타자, 더욱이 공통감각을 지닌 타자에 한정되있다. 왜 그러한 사실에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인가? 칸트는 현상으로서의 타자와 물자체로서의 타자를 나눈다. 물자체로서의 타자란 타자의 인격성, 혹은 자유인데, 그 것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죽은 자나 미래의 인간이다. 현상학적인 타자론은 그 것을 결여하고 있다.
1) 행복주의로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행복주의, 혹은 공리주의가 득세한 영미계 윤리학에서는 칸트를, 의무를 위해 행복 추구를 희생시키는 가혹한 도덕가로 폄하해왔다. 그러나 역으로 칸트가 살던 시기의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와 함께 탄생한 공리주의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이 것은 당시 독일의 전통적 도덕관에서 유래했던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공리주의 비판은 그 것과 전혀 층위에 있는 것이다. 오히려 칸트는 전통적 도덕관에 비해서라면 공리주의 쪽을 지지했을 것이다. 칸트는 인간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자유(자기원인)가 아니라는 것 뿐이다.
영미계의 윤리학에서 자유는, 타인에게 위해만 가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그러한 자유가 '자유'가 아니라고 보았다. 자유로운 선택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 내외적으로 다양한 원인에 근거하고 있다. 즉 타율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아이폰을 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것은 자발적인 욕망이 아니다. 아이폰을 내놓은 애플, 아이폰을 한국에 출시한 KT, 아이폰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아이폰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러한 욕망이 자발적인 것일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유일리가 없다.
그렇다면 자유, 혹은 자율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 것은 '자유로워지라'는 당위에서만 존재한다. 그 때 잊지 않아야할 것은, 바로 그것이 타자의 '자유'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 그러나 "타자를 수단으로 대하는 것"은 매우 피하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 분업과 교환의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 것 역시 타자를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봉건제의 농노나 노예와 달리 자유롭다. 자유로운 계약 관계에 의해 자본가를 찾아 일한다. 그러나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목적(자유)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 자본가는 단지 목적일 뿐이다. 칸트의 도덕법칙에는 이러한 생산관계를 바꾸자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신칸트학파(마르크부르크파) 철학자들이 칸트에게서 사회주의자의 면모를 본 것은 그 때문이다.
영미계 윤리학이 칸트를 배척하고, 왜곡한 것은 사실 칸트의 철학 안에 이처럼 자본제 경제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미계의 공리주의적 윤리학은 인간이 이기적이며, 각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거기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밴덤)을 달성하는 것이 윤리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 = 행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양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화폐로 환원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은 쉽사리 화폐, 이익으로 환산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윤리학의 문제는 경제학의 문제로 치환된다.
실제로 고전경제학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는 윤리학자였고, 윤리학의 일부로 경제학을 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이기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만인의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고, 거기서 나오는 빈부의 차와 대립을 상호간의 동정(sympathy)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것은 중세적(종교적) 자비나 연민과는 달리 에고이즘을 긍정한 상태에서 생기는 '도덕 동정'이다. 오늘 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도덕 동정'이 존재하고 있고, 많은 부자들이 사회적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자본제 경제의 본질적 결함은 이런 종류의 '도덕 감정'에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선 국내적 계급 문제로 나타나고, 또 국제적 남북 문제로 나타난다. 선진국에서 사회복지나 보호 정책으로 계급대립을 완화한다고 해도, 그 것은 국제적으로 남반구(후진국)를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또 세계적인 계급대립을 보편화한다. 선진국 안에서도 '남쪽'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미래의 타자 역시 '수단'으로 삼고 있다. 발전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미래의 타자가 마땅히 누려야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공리주의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끼리의 공공적 합의에 의해 발전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 (그 것이 정말로 '공공적' 합의인지는 둘째치더라도) 그러나 미래의 타자와의 합의는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이 것이 칸트의 공리주의 비판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동시에 미래의 인간,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리의 공리가 미래의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 대하고 목적으로 대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라면, 그 것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인간을 위하여'라고 말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미래 인간을 위해 우리가 희생한다고 해서 그들이 감사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미래의 인간에게 감사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감사하든 안 하든 상관 없이,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칸트가 말하는 '의무'이다.
2) '죽은 자를 두려워하라'는 말의 의미
그렇다면 죽은 자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는 장례식에서 죽은 자를 애도한다. 그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있는 자를 원망해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었고, 그 것을 예방하기 위해 장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장례의 목적은 죽은 자를 제외한 사회적 관계의 체계를 재확립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단순히 생물적인 죽음에 그치는게 아니라, 사회적 승인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장례는 죽은 자를 정리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해진다. 죽은 자를 애도하는 것은 그 죽은 자를 생각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의 부재로 불안정해진 공동체를 재확립하기 위해서고, 그를 잊고 추방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죽은 자는 항상 산 자의 방편으로 이용된다. 죽은 자는 이 것에 항의할 수도 없다. 우리는 죽은 이와 합의 할 수 없다. 죽은 자는 단지 자신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산 자 안에 무엇이 있는가 끊임없이 다시 묻는 존재이며, 우리가 죽은 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무를 묻는 존재다. 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결코 변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변했다는 것을 밝혀낸다. 키에르케고르가 '죽은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