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후문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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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학우의 대자보가 학교 내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그 뿐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응원과 지지를 밝히는 이들도 있고, 조롱과 분노의 반응도 보인다. 개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학교를 자퇴하든 말든 네 뜻은 알겠는데, 근데 도대체 왜 대자보를 붙인거냐?" 이 의문 뒤에 붙는 문장은 (슬프게도)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2)"혹시 대자보를 이슈화시켜서 스타가 되고 싶은 의도에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이미 (2)와 같은 저열한 중상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와 결합하여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가운데 - 이글루스나 네이버 기사 댓글만 보아도 이처럼 남의 일에 쓸데없이 열심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 나는 우선 많은 사람들이 (1)과 같은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김예슬 학우의 이 대자보는 분명히 어떤 수신인을 가정한 것이며, 따라서 그 수신인이 아니라면 (1)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또한 (2)와 같은 음모론에 혹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김예슬 학우가 '재입학 드립'과 '운동권 드립'으로 가득한 인터넷 쓰레기장의 비열한 중상들을 예견하지 못했을까?
정말로 그가 '닳고 닳은 운동권'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이미 '운동권'이라 낙인 찍힌 이들에 대한 돌 던지기가 수년간 계속 되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김예슬 학우가 자신에 대한 공격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용감하게 대자보를 붙인 것이, 다름 아닌 침묵하는 수신인들을 '호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다른 학우들의 혹시 모를 비웃음과 무시를 감내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수신인들 중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자보를 읽으면서 "이름만 남은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과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에 대한 크나큰 분노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예슬 학우처럼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받을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분노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곱씹을 수 밖에 없는 나, 그리고 '우리들'이야말로 이 대자보의 수신인이다.
나는 고려대학교에 학적을 둔 5년 동안 단 한번도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 돌을 던져본 적이 없다. 내가 입학한 06년도는 보건대 투표권 문제와 '교직원에 대한 학생들의 감금, 혹은 대치', 그리고 연이어 발생한 출교 사태로 봄부터 학교가 시끄러웠다. 학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이 터지자마자 '운동권 학생들'에게 출교 징계 처분을 내렸고, 여기에 반발하여 본관 앞 천막 투쟁이 시작되면서 학교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심정적으로 출교 처분에 반대했지만, 그리고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 문제로 오랜 시간 토론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천막에 앉아있던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운동권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일견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론은 나쁘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로 운동권에 거리를 두고 비판적 논평자의 역할에만 머물렀다.
국가와 자본의 사관학교가 되어버린 학교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정작 일선에서 어떻게든 학교와 전선을 형성하는 운동권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었다. 급진 이론과 사회 비판 서적을 공부하면서, 또 술자리에서 이러저러한 담론을 소비하면서 정작 나 자신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자각은 하지 못했다. 설사 결심하더라도 그 것은 '졸업 후'와 같은 먼 훗날의 일이지,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과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나는 수업을 들어야 하고, 또 친구를 만나야 하지. 또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은 대자보 붙이고 피켓 들고 민주광장에서 깃발 흔드는 운동권들의 자족적인 행위가 아니라 더 크고 어려운 것, 내 모든 역량을 다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미래를 향한 이론적 무기를 가다듬어야 해.."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당장 행동하고 실천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또 귀찮아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기합리화이며, 자위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실천해야 할지 '몰랐고', 또 설사 그 것을 안다하더라도 행동에 옮기기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자기 자신의 무지와 비겁을 솔직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는 이렇게 비겁한 내 모습은 여과없이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김예슬 학우의 글은 단지 '대학과 기업과 국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대학과 기업과 국가'를 "너무나 쉽게 비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국가를 비판하면서, 자본을 비판하면서, 대학을 비판하면서, 그 것을 비판하는 우리들은 정작 어떤 싸움을 펼치고 있나? 이는 자발적으로 퇴교를 선언한 김예슬 학우처럼 함께 집단 자퇴를 결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김예슬 학우 본인도 그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지금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겠나-"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가 학내에서'도' 할 수 있는 행동과 실천의 의지들 역시 너무나 쉽게 "어쩔 수 없이" 꺾어버리고 있지 않느냐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토록 약하디 약한 내가 홀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 하나만으로는 두렵고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아닌 '우리'라면 그 무게를 덜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조용히 응원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숨죽이고 있는 개개인이 모여 서로 생각을 나누고, 어떤 것이 되었건 '판'을 벌리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닌, 바로 이 글을 읽는 나와 당신의 일이다.
분명 얘는 또 쓸 데 없이 이런 글을 왜 쓰나,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여기까지 읽지도 않은 채 스크롤의 압박을 느끼며 지나친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 것은 나 뿐 만이 아니라 또 다른 침묵하고 있던 수신인들과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다시 말해, 지금 학내 어디에서건,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를 읽고서 '조용하지만,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다른 학우들의 발언을 요청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동안 목소리 한번 높여보지 못하고 대자보 한번 붙여보지 못했지만, 침묵 속에서도 분노했고 다른 이의 자보를 보며 가슴을 데웠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또 다른 학우들의 글이 정대후문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