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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동생활전선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2009년 9월, 군 인트라넷 커뮤니티 책마을에 양제열이 "우리는 88만원 세대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88만원 세대'들의 당사자 운동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궁극적인 이유를 '20대 대부분이 부모님 집에서 살며, 등록금을 지원 받기 때문' 이라고 정리한 글이다. '부모가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같이 데리고 사는 것'은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합의다. 그러나 양제열은 이러한 기본적 합의가 20대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하는데, 주거권(집 값 문제), 교육권(등록금 문제), 노동권(일자리 문제) 등 20대 문제를 이루는 세 가지 큰 축들에 대해 20대 본인들의 반발과 저항이 나타나야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한국에서는 부모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20대들이 실질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비단 20대들 뿐 아니라 부모 세대의 노년 안정성을 저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며, 20~30대 부부들에게 출산율 저하라는 사회적 문제가 등장하는 것 역시 유사한 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20대 문제는 세대 간 분배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재생산 능력 상실과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예찬은 여기에 대해서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기획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는 마츠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을 참조한 것이다. 20대들이 '가난뱅이 전략'을 실천하며 경제적 자율성을 가지고 공동생활을 하는 문화가 생긴다면, 실질적으로 가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뿐더러 20대들에게 당사자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이었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았을 때 '공동생활전선'은 "공동생활을 통해 집으로 부터 자립하여 사는 젊은이"들을 많이 만들어나가자는 운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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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리스티
    


       시간 : 2010년 4월 30일(금) 오후 다섯시 

       
       장소 : 고려대학교 학생회관 2층 생활도서관

       목적 : 현재까지 진행된 공동생활전선과 관련된 논의를 심화시키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기 위한 자리입니다.

       대상 : 공동생활전선 참여자들과 이 기획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생산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을 분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프리스티


역시 박가분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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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에 휴가를 나올 때 L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도서출판b에서 번역을 하는 분인데, 개인적으로 저 자신에게는 분석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저 자신이 이론적으로 막혀 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언을 구하고 싶은 심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독특한 언행과 정신세계에 매혹되어 있었던 것도 작용해서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주체의 윤리"라는 최근의 논문에서(다음 카페 <비평고원>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주체"에 관한 심도 있는 이론적인 천착을 보여 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최근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후기 자본주의적 폐색을 돌파할, "주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서 그 동안 L님의 이론적 여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여기에 대한 이런 저런 질문들을 안고서, 다시금 출판사 세미나실에서 조촐한 분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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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리스티


1. 주거지에 대한 짧은 코멘트

생각보다 서울 부동산 가격이 장난 아니네요!! 전세 비용이 7,000만원이면 6인 기준으로 각자 천만원 넘게 준비를 해야 할텐데요. 그만한 돈은 당장 우리 모두에게 없지 않을까요. 방법이라면 한 일년 유예기간을 두고 각자 빡세게 돈을 모으는 것인데, 쉬운 일은 아니죠. 그 일년동안 학교 다녀야 할 사람도 있고요. 긴 유예기간 동안 프로젝트 자체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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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리스티

책마을에 올라왔던 박XX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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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근에 여자친구와의 2주년이었습니다. 왜 이런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하냐면은, 역시나 어떤 '결의'를 다지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청춘사업에야말로 어떤 결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왜 아니겠습니까. 연애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분명 어떤 노동과 연루되어 있습니다. '노력'을 해야 하는 겁니다. 자신의 진정성과 무관한 지점에서 어쨌든 사랑의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어떤 혁명적-윤리적 결의이지요. 연애관계가 사적인 관계에 고유한 내밀한 충만감, 심리적 포만감으로만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젊은이들의 사랑의 본질이라는 신화에 눈곱만큼도 동의할 수 없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지요. 진짜 연애라면 그것은 혁명적인 대의로까지 고수되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런 절박함을 공유하는 연인이 있다면 그들은 정말 행복한 연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공동생활전선을 함께 해 나가면서, 대의를 위해 청춘사업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느냐는 제안(사실 이건 과외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더 저에게 큰 위기감을 주었습니다)에, 저는 지난 번 여자 친구와의 어떤 결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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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리스티



리플을 찬찬히 읽어보니 '공동생활전선'에 대한 구상이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이 다양한 구상들을 구체적인 하나의 형태로 확정하는 것이 좋겠지요. 제안자인 저의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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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리스티



책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생활전선이라는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위하여 '선언'을 작성할 것을 제안한 글과 그 리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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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공동생활전선 선언'을 작성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책마을에서 논의되는 바 처럼 학생회를 '점거'(이 표현에는 항상 해산과 패배라는 후일담이 붙긴 합니다..)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 부분은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먼저 실행에 들어가리라고 믿고 있습니다.제가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공동생활전선을 실현에 옮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그 것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정초할 수 있는 '선언'이 선행되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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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리스티

공동생활전선이라는 생각을 처음 떠올리게 된 것은 책마을 주민이자, 내 학교 친구이기도 한 Y군의 이 글 덕분이었다. 참고하여 올려본다. 이름은 익명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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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8만원 세대'와의 조우


  이천칠년 여름이었다. 나는 당시 다른 학교 애들이랑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말이 세미나이지 책을 읽고 잡담을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진 못했는데, 세미나 멤버 중 한 명이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 이 책이 백만부가 팔리면 세상이 바뀔거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며칠 후 난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88만원 세대'를 보았다. 연두색 표지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남자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상당히 촌스러운 디자인이었다 - 나중에 우석훈씨 블로그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출판 막바지까지 표지 일러스트할 돈을 못 구했다고 한다. - 새끈하게 잘 빠진 다른 책들과 달리 '88만원 세대'는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책은 사회과학 책으로서는 대박을 쳤고, 그 해 말 있었던 대선에서 메이져급 주자들은 한 번씩 언급할 정도로 사람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딱 한 분, 우리 모두 알지만 차마 이름을 말 하지 못하는 그 사람만 빼고 말이다. 여튼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별다른 각주나 설명없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로 대중화 되었다. 그런데... 세상은 왜 안 바뀌었던걸까? 혹시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입에 한 번도 안 올리셨던 그 분이 당선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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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리스티


박가분님의 글. 원문 링크 http://blog.naver.com/paxwonik/4010120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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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동생활전선과 어소시에이셔니즘


  프리스티님으로부터 일전에 공동생활전선에 관한 유의미한 제안이 나왔다. 그 제안의 골자는, 진보적 전망을 가진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가출”을 감행해서 부모와 친족집단으로부터의 경제적 자립을 꾀해야 하며, 무엇보다 다 같이 모여서 생활을 함께 하며 자신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정치적-학문적 기획들을 “현실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오늘날 진보운동의 전반적인 방향상실을 극복할 방법이 없으며 이는 무엇보다 대학생활의 방향상실을 마주한 우리들에게도 더 유효하다. 예컨대 우리는 연애와 진보적 이론의 집단적 학습을 병행할 수 없다면 연애를 포기해야 한다. 결국 우리들은 젊은이들의 발랄한 소비문화적 감수성을 상찬하는 오늘날의 마케터들의 상투어들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예전의 “청빈”과 “검약”과 같은 고루한 규칙들을 용기있게 고수해야 하며, 심지어는 집단적 규율과 자기절제와 같은 옛 전체주의적인 폭력의 범주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자리잡고 있는 가정적-물질적 배경으로부터의 폭력적인 단절을 요구한다. 우리는 가정 내에서 어떤 역할을 기대받으면서 동시에 운동을 할 수만은 없다. 이것은 결국 언젠가는 모순을 일으키며 간극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간극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생활상으로도 “함께” 연대한다면 자신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간극들을 최소한 상대화할 수 있다. 등록금까지는 무리이지만 생활비 정도는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인 마쓰모토 하지메가 말했듯이 “함께 하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 물론 서로 도우며 자립할 수 있는 관계들은 공통의 대의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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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리스티

여기 저기서 공동생활전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듣는데, 대표적인 질문들을 추려 보니 이 정도 되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해 답변을 할 필요를 느끼는데, 나 뿐 아니라 다른 두 분들의 답변도 한번 모아보았음. 아직 의견 통일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분들의 답변이 모이는 대로 점차 업데이트 할 생각.

 



  
 1. 왜 꼭 지금 가출을 해야되나? 사실 가출해서, 일해서 돈 벌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간적인 측면에서 굉장한 낭비 아닌가? 차라리 일단 자신이 집에서 보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자신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그 후에 가출한다 해도 상관 없는 문제 아닌가?

 



 A : 집에서 돈을 받으면서 공부한다는 것은 어쨌든 부모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 빚은 어떤 형태로든 나중에 갚아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 부모 자식 관계가 일반적인 채무관계하고 어떻게 같냐고? 생각해보라. 어쨌든 아무리 훌륭한 부모라도 나중에 자식의 (경제적) 성공을 바라기 마련이다. 그 것은 자식이 부족함 없는 삶을 살기 원하는 마음이 물론 크겠지만, 어느 정도는 경제적, 혹은 심적인 '부양'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전혀 경제적 부양을 바라지 않는 부모더라도, 자식 입장에서도 내가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 자체가 하나의 부담이다.

 


 경제적 성공과 상관 없이, 사회를 위해서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위해서건 사랑을 위해서건 어쨌든 뭔가 하기 위해서는 젊은 나이일 수록 오히려 부모에게서 '독립'해야한다. 부모에게 빚진 상태로는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나아갈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경제적인, 혹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것은 이미 '자신의 인생'이 아니다.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한 인생이지.

 


 B : 그 것이 낭비인가? 독립이라는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나. 아니라면 언제 독립하려는가? 휴학하고, 공부하고, 다시 졸업하고, 취직할 때 쯤? 서른 즈음에? 그때는 또 무슨 의미를 부여해서 무슨 활동을 하려는가. 그때의 30대가 현재의 88만원 세대들이니까? 아니다.

 

 실은 나는 현재도 가출해 있는 상태다. 20세 이후로 집에서는 150여만원의 등록금을 제외하고 가끔 들릴 때 차비하라고 주는 소액의 용돈 말고는 지원을 받아본 적 없다. 그로 인해 대학로에서, 신림에서, 양재에서 나름의 공동생활을 했고 그에 대한 경험으로 앞으로 공동생활전선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나 실질적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디테일한 금전 계획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지금, 당장. 우리이기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의의들의 꼭대기에 궁극적인 대의가 존재하는 것이고.

 


 C : 나는 지금, 바로, 가출을 해야 한다. 지난 몇년간 나는, 부모가 보여준 외상적인 사건들을 목격해야 했다. 한국 사회의 한 남성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삶의 지표들을 어느 정도 확실히 끊어내고만 싶다. 그는 항상 다른 걸 꿈꾸면서도 삶 앞에서 포기하며 각본을 이행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삶은 도무지 나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를 미치게 만들 뿐이다. 아버지가 보여준 증자적 운명과 영원히 단절하기 위해, 나는 그 루트를 따르지 않고 싶다. 그런데 여지껏,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경제적 지원과 보살핌은 나의 그런 정신적 독립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경제적인 독립이 정신적 독립을 도출하진 않지만 정신적인 독립을 통해 완전히 절연할 아버지-세계 이후의 진정한 세계를 즐겁게 맞이하기 위해, 나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독자적인 주거공간을 마련해야한다는 건 나에게도 엄청난 부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고난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 고난은 결국 나를 이롭게 만들어줄 것이며, 또 나를 정신적으로 독립된 주체로 거듭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D :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당장 가출을 감행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학부생 때 대면했던 학생-사회의 파국들(출교사태)에 대해 모종의 부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공부나 경제적인 독립보다는, 학생사회를 실제로 철저하게 살아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글을 통한 소극적 방법을 통해서든지, 아니면 L님이 제안했던 학생회 점거라는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서든지, 학생사회와 '맞짱'을 뜨고 싶다. 사실 이 욕망을 호가인하게 된 계기는 책마을을 두고, "동물화"라는 아즈마 히로키의 용어를 대입시켜, 어찌 보면 인신공격이라고 할 수 있는 짓을 했던 것에서 출발했다. 거두절미하자면, 나는 학생사회에 대해 같은 것을 말하고 싶다.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쟁점을 정리했던 것과 유사한 제스처로서, 나는 "학생 사회의 위기"라는 쟁점을 드러내고, "학생사회의 동물화"라는 선정적인 주제를 통해, 타성화된 대학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테러를 가하고 싶다는 것이 내 욕망이다. 마오쩌둥이 "자유주의 반대"라는 논쟁적인 글을 통해, '자유주의'라는 중립적 용어를 궁극의 욕설로 바꾸어 버리는 자신의 개입의 제스처를 폭력적으로 부각시켰듯이, 나 역시 단순히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 말고, 보다 쇼킹하고 인신공격적인 방식으로 개입하고 싶다.

 E : 누구나 독립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재정적인 문제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독립의 주요 관건 중 실질상 가장 최고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이 질문의 답에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공동생활전선에 함께하고자 하는 모든 이는 모두 자본주의에 대한 현세대적 대안을 찾는, 즉 현실 속에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벗어나 새로운 생활양식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에 의해 포위되어 있으며 우리가 만들어나갈 공동체도 거기에 포위되어 있으리라는 점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본의 소유자에 대한 의탁(그 의탁이 가족적 온정에 의한 의탁이라고 할지라도)과 여기에서 촉발되는 관계는 필연적으로 예속적 관계일 수 밖에 없으며, 타협적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우리가 아무리 진보정당에 당비를 내며 활동하고, 대안언론을 후원하면 무엇할 것인가. 그 후원금은 모두 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지급하는 용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 상태로 가면 우리는 언젠가 앞세대를 구성하던 여러 지배담론들과 타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후원했던,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냈던 수많은 대안들은 앞세대를 구성하던 지배담론에서 나온 경제적 하부구조에 철저히 의탁했기에 가능하였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므로... 따라서 우리의 경제적 독립은 우리가 이끌어나갈 대안이론의 독립이기도 하다. 부모에게 용돈 달라고 땡깡부리는 마마보이가 어떻게 자기를 찾아가고 어떻게 자신의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꼭 지금이어야 하는가? 지금 현재 우리는 학부생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학부생들은 담론의 생산에 있어서 생산자라기 보다는 소비자의 위치에, 그리고 수용자의 위치에 서있다. 우리가 독립을 하는 목적은 바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고, 그 목소리는 일방적인 수용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담론의 생산자가 되기 위한 목소리가 될 것이다. 즉 수용자적인 상태에 머무르던 "학술 프롤레타리아"들이 자신들만의 "생산시설"을 갖추는 것이 이 공동체의 수많은 목적 중 하나이다. 이렇게 학적 논의들, 담론들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인양 말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굳이 비유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學을 생산하는 공장의 노동자로서 존재해왔고, 기존의 "학술 부르주아(교수사회)"들이 제공하는 봉급으로 근근히 연명해왔다. 하지만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 우리는 이제부터 학술부르주아지들에 의해 흔들리는 피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권리를 말하고, 우리의 논리를 생산하는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이렇게 수용자적 입장에 서있는 젊은이들의 반란에 있는바, 우리가 이미 수용자의 위치를 넘어선 상태에서 이러한 대안운동을 조직한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이미 우리에게 독립의 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성격의 운동을 조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아래 세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수많은 기성세대의 일부가 되어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리 그 성격이 진보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현재의 우리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될 수많은 미래의 수용자들, 학적 프롤레타리아들을 우리와 똑같은 위치에 방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2. 공동생활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개인공간이 없기 때문에 사생활을 침해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오랜 기간 동안 아무런 마찰 없이 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대의'라는 목적과 '규율'을 제시했는데, 만약 시작할 때는 다들 열의에 충만한 상태라 별 문제가 없어보일지 몰라도 누군가 모임을 빠지거나 지각하기 시작하면 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A : 맨 처음부터 지속적인 규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단위로 자율적인 규율 정하기가 있을 것이다. 그 단위는 한 달이 될 수 있겠고, 한 주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함께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서로가 가진 책임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잠을 이겨내며 새벽기도에 나오는 정도의, 그 정도의 책임감은 적어도 갖추고 있어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그 정도의 책임감이 있다면 누구나 같이 할 수 있을 정도의 규율이 될 것이다.

 


 B : 절대로 마찰 없이 살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성질도 못이기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마찰마저도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구성해야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갈 합리적인 규율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서로 양보하고 인정해가며 살아나가는 것이다.

 

 분명 공동생활전선이 학술적인 활동에서만 그치지 않으리라 본다. 아직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제안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여기 모인 이들은 각자 주무기로 삼고 있는 재능들로 그에 맞는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활동하느라 모임에 빠지는 경우는? 지각이야 그렇다 쳐도 고의적으로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열의가 없는 것으로 간주 해야하지 않을까. 지각이나 결석자들은 분명 그만큼 본인이 뒤쳐진다는 것 자체에 대해 스스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C : 그것이 신경증적인 것으로 도출되는건 위험하다. 그러나 공동생활은 항상 그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대의가 스트레스로 전락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대의가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많은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며, 구성 과정에선 그 프로그래밍에 무수한 에너지를 쏟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갈등을 미리 예정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프로그래밍의 과정 자체를 '프로그램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되, 고정된 프로그램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과정적으로는 구성원마다, 갖가지 모임마다, 제각각 조금씩 다른 규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하나의 대의가 동일한 규율 아래 뭉쳐지겠지만, 그건 아주 먼훗날의 이야기이다.


 D : 답하기 힘든 문제이다. 전공투처럼 집단린치를 통해 보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결국은 모여야 하는 '당위'와 '의제'를 정하는게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동생활전선이 학생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의 욕망을 가진 투사들의 모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만큼 애초에 그만한 정당한 이유와 결의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로 공동생활을 운영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 :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은 잘 해보지 못했는데 자생적인 감시(긍정적인 의미에서), 암묵적인 시선 등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인간을 믿어보는 수 밖에... 강제로 쫓아내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 그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벌금제를 운용하는 식의 방법은 별 효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더 생각을 해봐야 겠다.

 

 3. 공부를 해야한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공부의 내용은 무엇인가? '대의'를 향한 공부는 어떤 공부인가? 철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각자 전공과 관심이 다를 텐데,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주제를 찾을 수 있을까?

 


 A : 물론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모여서 토의를 통해 결정해야할 문제겠다. 일단 대략적인 생각으로는 이 정도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정치철학, 정치경제학, 정신분석학, 근현대사. 물론 이 것을 동시에 공부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하나씩 차례대로 공부를 해나가야하지 않을까. 이 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미래가 진행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에 대한 이론적 방향을 잡아주지 않을까.

 

 물론 '학문'으로서의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인 학술 세미나와 동시에, 주 단위나 월 단위로 '문화 읽기'를 병행해야하지 않을까. 음악, 영화, 문학 등 무엇이 되어도 좋다. 미시적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문화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B : 실은 내가 공동생활전선에 관하여 가장 고민하고 있고, 또 그래서 쉽사리 나의 의견을 제안하지 못한 것도 이 점 때문이다. 대의, 규율, 주거문제보다도 우리의 실질적인 활동이 되는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인 면모를 보자. 음악 한다. 글 쓴다. 현재 경영학도이며 신문방송학 쪽으로 편입 준비중이다. 철학에도 관심이 많고, 인생의 목표는 영상으로 구현되는 미디어아트를 추구하는 것이다. 무대예술쪽에도 발을 들이고는 싶지만 아직 갈피를 못잡고 있다. 자, 나는 무슨 공부를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따로 또 같이, 라는 프리스티의 말처럼 공부도 따로 또 같이 해야 옳다. 본인의 전공과 관심사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전공과 관심사를 연관지어 나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철학에 관심이 많지만 나 혼자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다. 그런 부분들은 누군가 보충해줄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생활 자체를 주요 관심사가 연결된 인원들끼리 모여 생활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럿이 모일때는 모두의 관심이 되도록 포용되는 넓은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그러다보면 정말 의외의 좋은 결과들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C : 분별학문으로 찾는다면 철학과 경제학 비판. 그러나 공부는 굳이 그렇게 분별화된 학문의 경계들로 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커리큘럼은 다양할 것이며 결국 우리는 경제학비판과 철학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가장 보편적인 공부거리의 교재는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나서라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라캉이나 스피노자를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많다. 나는 5,60년대에 파리에서 횡행했던 시네클럽을 떠올리고 싶다. 최근에 씨네21에서 독자클럽을 결성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이 캠페인은 3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하나의 씨네클럽을 결성하고나서 영화를 본 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옮겨적는 책무를 주는 캠페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또는 전문대 졸업 후 바로 직장에 다녀야만 했지만 세상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기를 갈망하는 20대들이 할 수 있는 공부 커리큘럼이, 내겐 중요하다.


 D : 결국 욕망이 같다면, 공부하는 주제는 달라도 서로 수렴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책마을만 봐도 관심사는 제각각인데, 결국 특정 저자들로 강박적으로 회귀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여기서 나는 헤겔이 말한 '교양bildung'과 동양적인 의미에서 '공부'를 구분하고 싶다. 사실 공동생활전선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빌둥'이 기초적으로 형성된 상태에서 수평적으로 시도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 교양을 쌓아가는 무의미한 과정(이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나 역시도 당장 외국어 공부를 해야하고, 수학-과학에 대한 소양도 쌓아야 한다. 어쩌면 수학의 정석을 다시 펼쳐보는 용기를 내야할지도 모른다)을 감내하는 건 각자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공부'란 무엇인가? 나는 일단 공부라는 이 단어에 함축된 동양적인 맥락은, 헤겔이 빌둥으로, 혹은 칸트가 계몽의 과정으로 지칭했던 것과 다른 과정을 지칭한다고 생각한다. 공부란, 기본적으로 세미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강독을 하는 것이다. 커리를 정하고, 그것에 관해 토론을 통해 서로의 공부 결과물을 제출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떤 커리를 정해야 할까? 일단 지금 대한민국의 학문적 담론지평에 '구멍'을 낸다는 각오를 먼저 해야하지 않을까. 벌써 한윤형씨는 한국의 근대역사 논쟁에 뚫려 있는 '구멍'을 자신의 방법으로 찾아냈으며, K나 L님도 분명 표준적인 역사서술에서 자기 나름의 '구멍'을 찾았다. 마찬가지로, 사고되지 않은 지점들을 철저하게 파고들며, '권위'로 통용되던 저자들을 철저하게 죽여 나가야 한다.

 E : 큰 틀의 내용은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토의를 통해 결정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예전에 프리스티씨가 말했던가? 우리 중 누군가는 아담스미스를 공부해야 한다고... 다시 말해 우리에게 흥미가 없는 분야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공부를 꾸준히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쉬운 예로 말해 수능 보기 전에 수학 싫다고 수학공부 안할 수 는 없지 않는가? 그러나 각자의 관심분야, 전공이 모두 다른 관계로 아무렇게나 쉬이 공부를 전개할 수는 없는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예시로 제시해본다.

 공동체에 참여하는 모두가 각자 자신의 전공이 있을 것이고, 그 전공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 다라서 관심분야나 전공이 같은 사람 2~3명 정도가 한 조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세미나/강독을 진행할 과목과 커리큘럼을 기획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그 그룹들이 뭉쳐서 1년의 공부 계획을 짜내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스티의 의견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문예"에 관한 내용이다. 음악, 영화, 문학 등의 테마에 대한 공부, 그리고 직접 악기 하나씩은 배워볼 수 있는 여유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공부하길 원하는 과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 근현대사, 서양 철학사, 맑스주의 정치경제학과 맑스 이후, 철학의 제문제들.


 4. 학교를 다니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과외를 뛰겠다는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을 벌면서 같이 공부하면서 학교를 다닌다는건지 모르겠다.

 

 A : 개인적으로는 학교 생활 / 경제 생활 자체를 병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나 같은 경우, 1년에 한 학기는 학교에 다니고 방학과 다른 학기는 휴학하고 알바를 할 생각이다. 물론 졸업은 늦어질지도 모르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졸업을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나가느냐가 아닌가 싶다.

 

 B : 몸을 혹사한다면 무언들 못하리.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금을 위해서 과외도, 밤 알바도, 새벽 신문배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실제로 그리 하였지만, 당장 먹을 쌀이 없는데 일 안하고 버틸 수 있다고 보는가? 우리가 그렇게 행하면서 모여 산다는 것이 내가 이해하고 있는 공동생활전선의 존재 이유다. 학과 시간표를 본인의 생활에 가장 유리하게 조정하고, 절제하여 공부하고 숙제하고 모임에 참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가능하다. 힘들어서 그렇지. 보통 그게 힘드니까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으려는 것 아닌가? 지금 배부르고 등 따숩고 싶다면 포기하고 발을 빼라.

 

 물론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의 여하에 따라 고수익의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고민하고 추진하는 것도 공동생활전선이 공동으로 추진해야할 숙제이다.

 

 C : 과외는 지극히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보통 20대들이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닐까? 막노동, 이삿짐 센터, 편의점 알바까지 무수히 다양하다. 그러면서 학교를 다닌다는 건데 그런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니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공동생활은 이 절망적 현실에서 시작될 수 밖에 없다. 그 절망을 어떻게 다시 희망적 전망으로 환기시키며 응시할 수 있겠는가가 우리의 가장 첨예한 관심꺼리가 될 수 밖에 없다.


 D: 일단 과외나 알바라는 두 선택지가 공존하는데, 여기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그런데 과외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아닌가?


 E : 나는 바로 복학하지 않고 1년 동안 휴학하면서 나만의 살 길(생존방법이라기 보다는 삶의 방식 찾기를 위한 실험)을 도모할 생각이다.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직종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임무다. 나는 현재 초등학생 과외계에서 중학생 과외계로 진출을 노리는 고모와 동업해 내가 문과 과목을, 고모가 이과 과목을 가르치면서 과외 월급쟁이로 살아갈까 고민도 하고 있는데, 예전에 H가 쓴 "냉면배달부는 과외를 하지 않아"라는 글이 자꾸 걸린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가 "우리의 경제적 독립은 우리가 이끌어낼 대안이론의 독립이기도 하다"라는 말에 모순되는 말인지도 알기 때문에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한 것 같다.


 5.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면 연애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섹스는? 다 같이 사는 공간에서 밤에 섹스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A :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연애의 양상은 다들 다르지 않는가. 물론 일반적인 대학생의 일상에 비하면 연애 생활에 쓰일 양적인 시간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충실한 연애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굳이 말하자면 서로서로 내 연인의 부모님이 엄격해서 통금 시간이 좀 빠르다고 생각하고 사귀면 될 것 같다.

 


 섹스?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의견 조율이 필요하긴 하겠다. 그러나 어차피 모텔에서 그런다고 하더라도 옆 방, 그 옆 방엔 누군가 있지 않나? 좀 부끄럽고 민망할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나 뿐 아니라 다른 이도 그럴 수 있지 않는가? 직접적으로 눈에만 안보이면 상관 없는 문제 아닐까..

 

 B : 만일 공동생활의 주거공간이 우리가 그리는 그림대로 2~4명으로 이루어진 생활공간이 모여 여러 군집을 이루게 된다면 연애가 크게 문제되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연애 때문에 모임에 지장이 있으면 문제지만 생활면에선 이래저래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굉장히 좁은 반지하의 2LDK(내가 양재에 있을 때 사용했다. 500에 45라는 합리적 공간이었다.) 4인으로 이루어졌는데, 쌍쌍이 연애한다고 가정했을 때 본인들 비위에 맞는다면 밤에 할 일 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내가 너무 자유로운 영혼인가? 뭐 꼭 다 같이 있는데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고 분명 집이 빌 시간대도 있을테고 한 쌍이 비켜줘도 되는 거고.. 그런 디테일한 문제는 실제로 생활하다보면 골치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또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C : 연애에 답이 있는가. 연애는 인생처럼 답이 없다. 다 같이 사는 공간에서 섹스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거고. 그 공동체가 어떻게 나아가는가에 따라 다르지 않나. 우문인 것 같다.


 D : 물론이다. 공동생활을 할 때 연애는 단연 제약될 수 밖에 없다. 주말이나 자유시간을 이용해서 연애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연애는 단지 '사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일까? 오히려 연애를 일종의 테라피로써 권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에게는 성욕이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과 별도로 남자들이 자립적인 내면을 형성하는 데 있어 연애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 굳이 숭고한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연애를 통해 불필요한 신경증적인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유용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본인도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지긋지긋한 우울증에서 해소되었다.

 
 E : 별 생각해본적은 없지만, 서로간의 암묵적인 약속이나 관행에 의존할 수는 없을 터이니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다. 디터 쿤첼만이 68혁명기에 조직했던 꼬뮌1이니 하는 공동체에서도 그러한 예가 없는지도 상세히 조사해 봐야겠고.. 그러나 나는 우리의 대의라는 것이 "재미없는 것"이 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겠다.

 6. 만약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산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 생활용품을 산다거나 요리를 한다거나 청소를 한다거나 빨래를 한다거나 등의 잡일은 어떻게 나눠서 할 것인가? 그리고 공동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고 했을 때, 모두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을텐데 의견이 나뉠 경우에는 어떤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나?

 

 A : 주마다 돌아가며 당번제로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각자 자신의 일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마인드를 가진다면 생각보다 크게 잡일들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막내들도 사실 청소 말고는 선임들보다 따로 잡일이 있는 건 아니다. 청소 같은 경우는 개인 공간은 각자 알아서 청소를 하고, 격주에 1회 정도 대청소를 모두가 함께 한다면 될 것 같다.

 

 의견 불일치 상황이 올 수 있는데, 다수결과 추첨을 적절히 혼합한 방법을 사용하는게 좋지 않을까. 이를테면 A와 B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 의견이 4:2로 나뉜다. 그러면 A 4장, B 2장의 추첨 용지를 만들어, 그 중 한 장을 뽑는 것이다. 운에 맞기는 비이성적인 발상 아니냐고? 글쎄, 정말 상대방의 의사 마저도 존중하는 것은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라도 나와 다른 생각이 채택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아닐까.

 

 B : 공동생활전선에 열의를 가지고 참여하는 인원이라면 분명 살림에도 열의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굳이 온실에서 벗어나 뛰쳐나올 이유가 없으니까. 공동의 생활용품은 공동의 비용으로 추산해서 해야한다. 분명 주거비용과 공과금과 식료품과 가재도구는 이에 해당된다. 세면도구, 옷가지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나머지 생활용품은 각자의 사비로 활용한다.

 우선 집안일을 나눌 때 최소한의 약속을 한다면 집안일 자체가 크게 없어질 것이다. 식사를 마친 본인의 그릇은 개수대에 넣어두지 말고 본인이 바로 설거지를 해서 누군가 떠맡을 필요가 없게 한다든지. 청소는 정말 개인의 공간은 개인이 책임지되 일주일에 1~2회 정도 대청소 비슷하게 다같이 모인 시각에 청소를 한다 하고. 빨래는 모아서 하되, 물이 빠진다거나 특수한 빨래법을 사용하는 빨래는 본인이 책임진다든지. 가장 필요한 합의는 생활공간에서 지키기로 한 이런 문제들을 등한시 했을 때 오는 불이익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불만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동물끼리 이런 부분에 관해 불화가 생겼을 대 가장 강력한 기준이 될 대전제가 자율적으로 필요하다.

 
의결의 경우는 글쎄, 표결과 토론을 적절히 사용해서 서로의 감정이 문제되지 않게 잘 해결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몸의 대화를 나눌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C : 군대처럼 당번제. 그러나 일상적인 평가와 자부심이 상존하는 일상생활이 되도록 잡일들을 즐겁고 행복한 노동으로 고취시켜야 한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나는 말년병장도 빗자루를 들 줄 알아야 한다, 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저 모든 것을 아주 즐겁게 해낼 수 있는 상태를 지지한다. 어느 순간 부터 나는 아주 즐겁게 잠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D : 군대처럼 임무분담계획대로 실시하면 되지 않을까? 이미 군대에서 겪는 문제이지 않는가?


 E : 당번제로 운용하되, 1주 1회 정도는 대청소를 결행해야 할 것인데, 이 때 청소 뿐만 아니라 청소를 마치고 난 후 서로가 1주일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7. 그러한 공동체라면 필연적으로 누군가 대표나 리더격인 사람이 생기게 되는데, 만약 그 사람이 무슨 일이 생겨서 장기간 자리를 비우거나 아니면 아예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그자리를 어떻게 메꿀 것인가?

 

 A : 일단 공동생활전선은 상호 동일시에 기초한 '공동체'라기 보다는 개개인의 자율적 주체가 모인 '연합'이길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누가 빠진다고 해서 모임이 위기에 빠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주도적으로 모임을 이끄는 몇몇이 생길수도 있다. 그들에게 모든 일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 역할을 분산적으로, 모두가 무언가 일을 맡아서 책임지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추첨이라든지.

 

 B : 작은 단위의 생활공간에서 아무리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조명한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할 것이다. 연장자 순일 수도 있겠고 정말 힘의 논리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정말 그릇이 크고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리더역을 자처할 수도 있겠고. 그리고 그 상위의 군집체, 즉 전선의 최선두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 공동체가 커지게 되면 임원들이 생길 것이다. 최대한 수평적 구조를 맞춰야 한다. 길게 자리를 비우거나 참여가 불가능하면 당연히 누군가 대체할 사람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엄마가, 엄마가 돌아가시면 맏아들이 가장을 책임지듯이.

 

 C : 공동체의 자생적인 힘에 의해 또 다른 입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생활의 주체인 구성원들은 그 입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되어선 안된다.


 D : 어려운 문제인데, 그럴 경우에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로 대리를 정하거나 순번제로 대표를 정하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 경우에, 공동생활전선이 '대표'를 내세워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E : 수평적인 구조라고 해도 리더격인 사람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리더격'인 사람이지 '리더'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대리주의에 빠지지 않을 것을 스스로에게 결의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독립정신이야말로 우리 공동체 정신의 주요 기치 아니었던가? 이렇게 대리주의를 거부하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주인이 된다면 대통령이 지금 죽는다고 대한민국이 안돌아가는 것은 아니듯이 리더가 유고하였다고 해서 공동체가 돌아가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8. 공동생활전선에서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한 것 같다. 공부를 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어도, 정치적 실천이라면 뭘 말하는 건가?

 

 A : 일단 공동생활 자체가 실험적인 실천이 되지 않을까. 이러한 생활을 홍보하고, 여기에 또 다른 누군가 아이디어를 얻어 함께 살기를 실행한다면 그 것 자체가 유의미할 것 같다. 실제로 우리도 그러하고.

 

 물론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학내 '진보적 개인'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지역-학내 사안에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 뿐 아니라 학내 학회-조직들과 함께 뚜렷한 목적을 가진 학술운동을 펼쳐나가는 방향도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B : 우선 공동생활전선을 이루어 여럿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실천이다. 그러고 있다는 얘기가 파급이 되고, 전선이 생기고 또 우리가 누군가 이렇게 살도록 만드는 것 자체가 실천이다.

 

 가장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선 아직 내가 말할 단계가 아닌듯 싶다. 스스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C : 지역사회 억압들에 대한 일상적 도전, 학교에서의 저항주체화된 대학생 개인들.


 D : 기본적으로 나는 공동생활전선이 처해 있는 지금-여기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전에 학부생 위주로만 공동생활전선을 사고한다는 것에 대해 비판을 당했지만, 우리들 중 대다수가 역시 '학생사회'를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동생활전선이 '실천', 혹은 '개입'해야할 대상이 바로 오늘날 '동물화된' 학생사회이다. 오늘날 학생사회가 어느 시대보다도 더 역동화되고 다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비롯해서 묘한 자기만족감과 정체현상 역시 대두되고 있다. 대학생이라는게 디씨인사이드나 이글루스처럼 자의식은 강하지만 전반적으로 맹한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동물화가 아니면 뭐겠는가. 이 추세를 당장 되돌리지 못하더라도, 한번 시끄러운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나는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학생사회에서 '분란'을 일으킬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은 이미 존재하는 학교의 제도적 장치들을 이용하는 것을 통해 실천 될 수 있다. 우선은 L님이 우선 제안했던, '학생회의 재구성'이다. 지금은 유보적이지만 한때 L님이 당장 '선본'을 조직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했던게 기억난다. 처음에 이러한 제안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에서야 오히려 바로 그러한 각오가 필요한게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나는 지난번 소사선거에서 J님이 던졌던 모토를 아직도 기억한다. "저의 당파성에 보편적인 지지를 호소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보편성'과 '당파성' 간의 대립되는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분절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날 학생사회가 여전히 그것을 대표하는 '보편성'을 표상한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어야하느냐는 질문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보편성'이라는 것이, 실제로 단순히 당파적인 특수한 이해들에 의해 절합된다는 냉소적인 통찰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의 특수한 입장들에서 철저하게 단절되어 나가는 극단적 당파성을 감수해야만 비로소 '보편'을 논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엄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 모든 것을 J님은 짧고 압축적인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렇다면 L님이 "학생사회의 재구성"을 목표로 선거운동을 제안한다면, 이 것의 모토 역시 "우리의 당파성에 보편적인 지지를 호소한다"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 것은 어떤 과반이나 단과대학 위주의 친밀함의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는, 학생 사회 주체들의 연합이 독자적인 '선본'을 내걸고 학생사회의 보편성을 경쟁하는 것이다. 이 것은 나름의 충격을 동반할 것이다. 그 어떤 단과대도, 그 어떤 과반과도, 그 어떤 친밀감의 공동체에서 과감하게 절연할 수 있는 주체들이 상상하는 학생사회에 대한 공약을 내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것이 M님과의 대화에서 단초를 얻게 된, '어소시에시션에 의해 횡단된 공동체'와 유사한 맥락이라 하겠다.

 L님이 말했던 학생사회의 재구성이란, 바로 학생사회-주체들의 어소시에이션에 의해 가로질러진, 관 캠퍼스적 학생 사회가 아닌가? 바로 이렇게 새롭게 도래할 학생사회를 통해서만, 우리는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거시적인 강령에서부터, 재개발 반대와 학생 자치 보장이라는 요구들을 더욱 멀리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E : 실천이라면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공동생활전선의 아지트는 분명 학교 근처에 차려질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그 근방의 주거민들은 대부분 학생일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펼쳐나가야하지 않을까. 예컨대 일정 기간마다 한번씩 주위에 사는 학생들을 초대해 영화를 보고 토론회를 갖는다든지, 주위의 하숙/자취생들을 모아 자발적으로 골목길을 쓸고, 제설작업을 해나간다는지 하는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또 공동생활전선의 이름을 내걸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9. 공동생활전선은 누가, 어디서, 언제부터 시작하는건가?

 

 A : 참여를 결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물론 적절한 시점에 명단을 만들 필요를 느낀다. 나는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여기에 이름을 올려주었으면 한다.

 어디서? 그 것은 참여를 결심한 각자가 상호 논의를 통해서 지역을 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성북-동대문구라면 어디든 오케이다.

 언제부터? 나는 2010년 가을 부터 진행할 생각이다. 일단 한 학기를 다니고, 여름에 알바를 해서 당장 주거지를 구할 정도로 돈을 모으고, 그 다음 학기는 계속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거다. 2010년도 가을에, 성북-동대문구에서 함께 살 사람을 구한다면 바로 연락주시라.

 

 B : 공동생활전선 선언에 합의한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논의해야할 부분이 많고, 또 공동생활전선의 의미를 알고 함께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 많은 논의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 근 시일 내에 오프 모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획 시작 자체는 가장 늦어져도 2011년 상반기 안에는 이루어져야 한다.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 당장 가출하라고 하고 싶지만, 인간이 미련에 젖는 동물인걸 어쩌는가. 다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C : 당신이, 거기에서, 조만간 해라! 나도 할테니.


 D : 늦어도 복학하기 전까지, 나와 고대의 동지들과 더불어.


 E : 참여를 원하는 모두가 이 전선에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 2011년이 오기 직전까지 완료되면 좋지 않을까? 우리에겐 아직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일단 '공동생활전선 준비위원회'를 편성하여 1년 가까운 시간을 활동한 후 2011년을 기점으로 선언을 발표하고, 선언을 각자의 학교에 배포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도 괜찮겠다.

 10. 공동생활전선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다 남자들인것 같은데, 여기서 여자들의 몫은 없는건가?

 

 A : 사실 남녀를 따지는게 좀 무의미한 것 같다. 남자, 여자이기 이전에 같은 '사람들' 아닌가? 남자들이라고, 여자들이라고, 혹 남녀가 섞여있다고 해서 공동생활전선 자체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같이 사는 문제? 동성끼리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아도 좋고, 섞여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살아도 좋다. 이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B : 하하하! 논의의 시작이 군대에서 이루어졌는데 뭘 바라겠는가? 공동생활전선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 동의하는 여자들도 생길 것이고, 여성과 함께 사는 생활에 크게 문제를 갖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자들끼리 전선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고. 자신의 연인과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건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열린 마음을 가지면 안 될 것이 없다.

 

 C : 왜? 난 여자들이랑 같이 살거다. 거기엔 어떤 선후관계가 없다. 어떤 글에서 프리스티가 우선 남자들만 모이는 만큼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여성 역시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생활에 대해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거기엔 선후관계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항상, 처음부터,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완전무결한 시작이 필요하다는게 아니라, 불완전하고 결함투성일지라도 주체는 여성과 남성 모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자가 꼭 있어야만 공동생활전선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구성원이 전부 남자여도, 여성, 남성이 함께 주체인 공동생활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D : 공동생활전선은 기본적으로 모두와 연대하겠다는 각오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 또한 여기에 포함되는데, 사실 여자의 몫이라기 보다는 여학생회의 몫, 혹은 여성 자치활동의 몫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현실적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성차'라는 것을 겪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요청은 존재한다. 사실 같은 세계관이나 담론이라 해도, 분명 여성적인 사유와 남성적인 사유로 분열된다는 경험을 누구든지 일상적으로 겪어봤을 것이다. 분명 운동의 과정 속에서 '여성의 관점'을 통해 달리 보일 수 있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차와의 '조우'없이는, 단순히 전투적이고 파괴적인 유사 전사집단처럼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과 같이 생활은 할 수 없다하더라도, 어떻게 성차를 유지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실 우리가 여성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방법들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11. 공동생활전선을 하게 된다면 그럼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는 건가? 개인적 시간과 공동의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혹시 시간표 같은 걸 만들어서 하는 건가? 그 시간표는 어떻게 되는가?

 A : 개인적으로 잡은 틀은 일단 이렇다.

 

월~금

 

06:30 기상 후 단체 운동
07:00 조식 및 정리
07:40 강독
08:40 개인 시간 (학교, 알바, 연애, 여가, 뭐든 좋다.)

 

19:30 석식 및 정리
20:15 강독
22:00 자유시간
23:00 취침 (금요일의 경우 24시까지 강독 후 취침)

 

 

07:30 기상 후 단체 운동
08:00 조식 및 정리
09:00 세미나
12:30 개인 시간 (일요일 22시 까지)

 

 

22:00 공동토의 (한 주간을 돌이켜보기, 다음 한 주를 계획하기)
23:00 취침

 


 이 시간표는 학기 중 기준이며, 방학 때는 변할 수도 있다. 공동생활에 있어 특기할 것으로 평일 아침, 평일 저녁 강독과 토요 세미나가 있다. 토요 세미나는 앞서 말한 '현대정치철학, 정치경제학, 정신분석학, 근현대사'를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것이고, 평일 아침과 저녁 강독은 주, 월 단위로 논의하여 프로그램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전은 문학을, 저녁은 영화가 어떨까.

 

 여기에 월 마다 한 두번을 정해 주말 동안 공동행동을 한다거나, 학내-지역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B: 이하 내용은 전부 가정임.

 

 나만의 가정으로 이야기를 꾸며보겠다. 나는 2LDK에 5인 공간에서 생활한다. 1쌍의 연인과 솔로 3명이 짝으로 각각 방을 쓴다. 우리는 서울 모처에 자리잡고 있고, 근처에 공동생활전선 이름 하에 모인 이런 생활 공간이 3개 더 있다. 거실에 큰 게시판이 있다. 여기에는 5인 일주일 시간표가 있고, 누구나 확인할 수 있고 본인은 공동시간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언제든 본인의 시간을 수정할 수 있다. 누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꼭 통보해야한다는 약속을 최대한 지키고 있으며, 살림도 최소한의 규약 속에 최대한 양보하며 살고 있는 이상적인 집단이라 가정하겠다. 개인과 공동시간은 크게 구분되지 않고 산재되있다. 밤에 일하는 2명과 더불어 아침에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있고 참여 의사는 최대한 자유다. 실제로 서로의 유대감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도가 높은 식사자리다. 평일  1회 주말 1회 총 2회 서로 어떤 논제에 대한 토의나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 대해 세미나 형식으로 스터디가 준비되어 있고, 주2회 혹은 월 1회 정도로 근방 공동생활전선 모임 4집단이 모두 모여 발전적인 방향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이 있다. 이 집단에 대한 시간표 요약.

 

 

00:00~06:00 알바
06:30~07:00 퇴근, 기상도우미
07:00~08:00 공동식사 및 뒷정리
08:00~13:00 취침
14:00~19:00 학부생활
19:00~00:00 개인생활(취침)

 

 화

00:00~07:00 취침
06:30~07:00 기상
07:00~08:00 공동식사
08:00~17:00 학부생활
17:00~19:00 개인생활
19:00~00:00 알바

 

 수

00:00~01:00 알바
01:00~07:00 취침
07:00~08:00 공동식사
08:00~10:00 개인생활
10:00~19:00 학부생활
19:00~22:00 공동생활전선 모임
22:00~00:00 알바

 

 목

00:00~06:00 알바
06:30~07:00 퇴근, 기상도우미
07:00~08:00 공동식사 및 뒷정리
08:00~17:00 학부생활
17:00~19:00 개인생활(취침)
19:00~00:00 알바

 

 금

 

00:00~06:00 알바
06:30~07:00 퇴근, 기상도우미
07:00~08:00 공동식사 및 뒷정리
08:00~17:00 취침 및 개인 생활
18:00~22:00 공동생활전선 합동 정기 모임
23:00~00:00 취침

 

 토

 

00:00~06:00 취침
06:30~07:00 기상
07:00~08:00 공동식사 및 뒷정리
08:00~17:00 개인생활
17:00~20:00 공동생활전선 모임
20:00~00:00 알바

 

 일

 


00:00~06:30 알바
06:30~07:00 퇴근, 기상 도우미
07:00~08:00 공동식사 및 뒷정리
08:00~15:00 취침
15:00~18:00 개인생활
18:00~00:00 알바

 

 * 개인생활시간은 공부 연애 집안일 취미활동 그 모든 것이 포함
 * 이 시간표는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희생해야 할 것과 본인의 생존과 모임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암묵적으로 내포되있음
 * 그외에 공동생활전선 활동으로 있는 디테일한 부분은 가정하지 않았음. 활동이 활발한다면 개인의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 당연하며, 활동에 열의가 있다면 그 시간이 개인적인 시간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함. 그렇게 되어야할 실질적인 대의가 필요함.
 *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시간표는 훨씬 디테일하고 유동적임. 사람 사는데 시간이 마음대로 되는 경우는 없으니까.

 

 C : 고정된 시간표는 필요 없고, 일주일 중 요일마다 어느 시간에 무언가 공통적으로 뭘 하겠다는 것만 정해두면 좋을 것 같다. 한달에 몇번씩 크고작은 이벤트를 하는 것도 필요하고, 또 외부인과 함께하는 지역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예컨데, 석관동주민들과 함께하는 소나무 야외영화제. 가을밤, 소나무가 가득한 동네 공원에서 열리는 영화제다. 개인별 시간계획은 모두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생활과 고민을 공유하며 짜는게 필요하다. 대략 일주일에 한번정도씩 시간표를 짜고, 지난주에 보낸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D: 여기에 대한 대답 역시 임무분담계획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E :

 월~목

 06:30 기상 및 구보
 07:00~08:00 조식 및 정리, 담소
 08:00~19:00 개인시간
 19:00~20:00 석식
 20:00~23:00 강독 혹은 세미나, 정리
 23:00~06:30 취침

 

 06:30 기상 및 구보
 07:00~08:00 조식 및 정리, 담소
 08:00~      개인시간 (일요일 20:00까지)
 
 토

 08:00 기상 및 구보
 08:30~10:00 조식 및 정리, 담소
 10:00~      자유시간  (일요일 20:00까지)

Posted by 프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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